세상모든여행/스페인, 포르투칼 한달여행

스페인&포르투칼 걷는 여행,에필로그

흐르는물처럼~ 2023. 1. 4. 11:39

스페인 포르투갈 총 15개 도시 자유여행. 60넘은 나이에 이루어 낸 무모한 도전, 하지만 해 볼만한 도전이었다. 떠돌이로 한 달간을 여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간을 짧게 해서 도전하고 싶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걷다가 뛰다가 쉬다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행, 그 속에서 이 나이까지 몰랐던 새로운 것을 깨우치고 느낀다. 좀 더 젊었을 때 여행했다면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점이 좀 아쉬움으로 남지만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면 되니까.

#편견
빌바오 도착 후 컵라면 사기 위해 중국인 마트에 구글지도에 의지해 가는데 알려주는 길이 도시 어두컴컴한 뒤편 도로. 길 양쪽으로 도로 끝까지 족히 수십 명 되는 흑인 청년들이 좁은 인도에서 삼삼오오 지들끼리 담배피며 낄낄거리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 길을 빠져나오기까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6개월 영국살이 하면서 흑인에 대한 편견이 좀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평범한 그들이 거기 있었을 뿐인데 내가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우리를 힐끔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마치 총알을 피해 가는 기분이었다.
모르면 두려운 법이다.

#안식처
숙소는 주로 호텔을 잡았으나 세비야에서 비앤비를 이용했다. 파티오가 있는 가정집은 어떤 모습일까? 대문하나 열고 들어가면 파티오 즉, 중정이 있고 두 가구 정도 산다. 노인 사는 가정집이라 작지만 조용하고 편했다. 테라스가 있는 방을 사용했다. 무엇보다 그들 삶의 일부를 들여다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비앤비, 호텔 2성급, 4성급이 별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삶과 함께하기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그들 살아가는 모습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차 렌트를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길을 잃더라도 거기서 또 다른 볼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걷는 여행의 찐 맛. 어디서든 이방인이 보는 그들의 삶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지하철에서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지만 길 물어보는 외국인을 배척하지도 않고, 눈이 마주치면 Hola!! 하고 인사하기도 한다. 다만 후미진 좁은 골목길에는 소변 냄새가 진동하고 산책하는 개똥은 치우지 않아도 되는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좁은 곡몬길을 걸어 다니면 늘 누군가의 소변을 밟고 다녀야 한다. 소매치기보다 개똥과 소변을 피하기가 어렵다. 물청소차가 청소하는 것도 보았지만 매일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우리 시민의식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느리다. 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기다림에 지친다. 식당, 공항, 버스, 기차도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지연이 일상이다. 시간표가 왜 필요한지! 빨리든 느리게든 문화가 다를 뿐, 그들은 전혀 불만이 없었다.

#먹거리
5주 살다 보니 역시 음식이 문제였다. 6개월 영국 살이에서는 홈스테이 3개월 하고, 레지던스 3개월 있었지만 식사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홈스테이 주인의 저녁식사는 늘 건강식이었고, 레지던스에서 한 끼는 한식으로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한 달 넘게 파에야와 타파스류만 먹을 수는 없었다. 스페인 음식 먹을 것이 많고 파에야도 맛있지만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결국 중국인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컵라면과 김치를 구입해서 때우기 시작했다. 현지 음식 먹는다는 전제로 컵라면 몇 개 안 사간 것이 후회되었다.
마지막 여정인 바르셀로나는 큰 도시라 한식당이 있어 몸보신 차원에서 한 끼는 무조건 한식을 먹기로 했다. 그들의 늦은 식사문화가 우리와 맞지 않아 때맞춰 식당 찾기도 쉽지 않았다. 컵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평생 먹은 컵라면 보다 많이 먹었을 것이다. 나이 들면서 입맛의 범위도 좁아지나 보다.

가우디 디자인 의자

#몸이 재산
여행시작 이주일 정도 지나니 먹는 것아 부실해지면서 조금씩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 온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쉬어야 할 때 언제든지 쉴 수 있고 계획변경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쉬엄쉬엄하자고 했지만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욕심이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것은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지의 모든 곳을 갈 수 없다. 긴 여행에서 결정적 순간에 포기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다.
세비야에서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 말라가 여행 취소하고 그라나다로 바로 갔다. 리스본에서 허리가 아파 며칠 걷기 힘들었는데 그라나다에서 갑자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잠도 못 잘만큼 아파 자다가 준비해 간 약을 먹기도 했고, 출국 직전 이석증으로 고생한 탓에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감기 몸살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였고, 소화는 잘 안 되고, 면역력 떨어졌는지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오고, 결국 입안이 헐고, 때운 어금니가 떨어지고 해도 그때그때 잘 견디어낸 것 같다.
온갖 종류의 약을 다 챙겨간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진단키트까지. 무엇보다 혹시나 해서 4차 접종도 했고 마스크도 열심히 하고 다녔는데, 설마 하면서 가지고 간 진단키트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이었다는 것이 황당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에서 코로나 안 걸리면 이상할 정도다. 대부분 마스크 착용하지 않는다. 단, 버스. 지하철과 병원에서는 의무지만 지하철에서는 안 쓰는 사람이 더 많다. 특히 유모차에 마스크 안 쓴 아기태우고 지하철이나 버스 타는 부모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유별난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심하게 앓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약 챙기기
약은 정말 꼼꼼하게 챙겼다. 평소 먹던 약은 약봉지용 지퍼백에 나눠 담고, 코로나 대비 진단키트-이게 쓰일 줄이야-증상별 감기약, 소화제, 지사제, 정로환, 파스, 증상별 연고, 고정테이핑, 알레르기약 등 소형 여행파우치 한가득이다.
여행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약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결론. 약을 살 수도 있지만 설명도 어렵고 우리에게 잘 맞을지 의문도 들고 무엇보다 비싸다. 특히 평소 먹는 고혈압, 고지혈약은 대체 불가하다는 생각에 두 개로 나눠 백팩과 캐리어에 나누어 넣었다. 어느 한 가방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여행 끝날 때까지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았고 가방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비성수기라 여행객이 많지 않아 좀 편하게 다녔다. 결과로 가져간 약은 상당히 유효했다.
여행 필수품으로 정한 것이 하나 있는데 정관장 목캔디이다. 출국 시 인천공항에서 그냥 홍삼캔디인 줄 알고 한 캔 샀더니 목캔디였고 잘 못 샀구나 생각했다. 코로나로 목이 칼칼할 때 하나씩 먹었더니 목도 덜 아프고 기침도 덜한 것 같고, 멀미에도 도움 되었던 것 같았다.

#느린 여행, 기다림 그리고
여행은 기다림이다. 여행 가는 날짜를 기다리고, 차시간을 기다리고, 대기줄 기다리고, 집으로 돌아갈 날짜를 기다리고, 새로운 여행을 기다리고 심지어 화장실 줄도 기다리고…
빨리에 익숙한 나도 불편한 마음 없이 차분하게 기다린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문화의 차이를 보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고정된 편견이나 생각의 변화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산이 될 것이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 주간보호 센터 다니시는 시어머니 걱정을 온전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걱정과 두려움도 여행의 일부분이라 떨쳐 버릴 수 없다면 그것마저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는 못 했다. 귀가하여 집에서 한 끼 식사와 하룻밤 깊은 잠이 바로 보약이다. 집이라는 돌아갈 안식처가 있기에 힘든 여행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