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마지막 일정. 오전에 포기했던 부라노섬에 갔다가 오후에 기차로 비첸차로 간다. 안 가려고 했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왕복 두 시간이란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예쁜 섬이라 호텔에 캐리어 맡기고 출발한다. 8시 반인데 햇살은 뜨겁고 사람들은 많다.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 앓는 베네치아 정부가 4월 25일부터 도시 입장세를. 받는다고 한다. 참 별별세금 다 있는 이상한 나라, 이탈리아이다.
바포레토로 무라노 거쳐 부라노에 도착한다. 무라노가 유리공예가 특산품이라면 부라노 섬은 레이스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16세기 이후 레이스 공예 산업이 발달하면서 남자들은 어업으로, 여인들은 레이스 공예로 생계를 이어갔다.
맨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원색으로 화려한 집들이다. 집 외관을 이렇게 칠한 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안개가 짙은 부라노 일대에서 어부들이 조업을 마치고 자신의 집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칠했다는 설, 술에 취한 남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집을 찾아오라고 칠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 외 고기잡이배를 알록달록 칠한 것에 아이디어를 얻은 정부가 집 외벽을 다양한 색으로 칠하게 했다는 설 등이 있는데 현재 각 집들은 관광 명소가 되어 정부에서 페인트 구매비를 지원해 준다고 한다.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원색의 집이 눈길을 끈다. 베네치아는 색이 좀 우중충하고 집이 낡아도 사진으로는 예쁘게 나오지만 여기 부라노는 있는 그대로 사진이 찍힌다. 사진빨이 없다. 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돌을 쌓아 두 건물을 지탱하도록 하는 모양이다. 살다 보니 나온 생활의 지혜일까 아니면 궁여지책일까?
야외 테라스 파라솔도 화려하다. 멀리서 봐도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알록달록한 원색에 취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빨랫줄에 걸어 놓은 빨래마저 소품 같아 운치를 더 한다.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왜 원색의 낡은 집에 열광하는 것일까? 유리와 시멘트로 이루어진 회색도시에 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기 때문에 밝은 색을 보면서 스스로 치유하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레이스 박물관. 부라노 남지들이 바다로 나간 동안 집에 남은 여인네가 손뜨개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베네치아 특산물이 되었다. 레이스 학교였던 자리에 박물관이 설립되었고 아름답고 희귀한 레이스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사람 손으로 이런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코바늘 뜨기와는 좀 다르다. 할머니 한 분이 앉아서 레이스를 짜고 있다. 애기 양말이 너무 앙증맞다.
거리 곳곳에 레이스 가게가 있고 나도 사진에 보이는 저 가게에서 머플러하나 산다. 예쁘고 낭만적인 섬 부라노를 따나면서 계속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주체할 수 없다. 이 또한 욕망이려니.
돌아오는 바포레토 정거장에서 만난 강아지. 혀 빼물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노견이다. 개모차는 여기서도 필요하다. 갑자기 우리 집 강아지 콩이가 생각난다. 멀리 떠나 있어도 가족은 마음의 보석상자 속에 있는 존재이다. 굳이 열어 확인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존재이다.
비첸차행 기차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아 호텔로비에서 쉬다 역으로 간다. 일리 에스프레소 한잔 빠르게 마시고 탑승한다. 에스프레소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3.5유로, 서서 마시면 1.4유로이다. 어느 카페든 식당이든 자리값이 있고 도시에 머물면 도시세금을 내야 한다. 움직이면 무조건 비용이 발생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드디어 비첸차에 도착. 인구 12만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한때 르네상스 시대에 미술과 건축의 중심지였던 적도 있었다. 16세기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한 훌륭한 건축물들이 도심에 보존되어 있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여기저기 흑형들이 보인다. 이 작은 도시에 흑형들이 이렇게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단도리. 영국 6개월 있으면서 인종에 대한 편견은 많이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내 뿌리 깊은 곳에는 아직도 편견의 불씨가 살아 있었나 보다. 참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타악기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버스킹 하는 사람도 많고 악기도 다양하다.
16세기 팔라디오가 설계한 건물로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데 휴관이라 내일 다시 오기로 한다. 키에리카티 궁전 시민 미술관.
테아트로 올림피코. 르네상스 시대의 첫 번째 실내 극장이다.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맡아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사망하자 그의 제자 의해 완성되었고 1585년 3월 3일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첫 작품이라고 한다.
극장 안에 들어서니 입이 벌어진다. 3000석 규모라고 한다. 그 당시 모든 공연과 경기는 야외극장에서 이루 졌기 때문에 실내극장은 혁신적이었지만 생소했을 것 같다. 하늘 같은 느낌이 나게 하려고 했던 것이라 짐작되는 프레스코화 천장도 극장과 조화를 잘 이룬다. 무대안쪽에는 무대 장치로 사용되었던 것들이 가득하고, 섬세한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극장이다. 가이드 투어도 좋을 듯하다. 여기서 오페라 한 편 보고 싶다.
극장 안뜰. 별로 가꾸고 있는 것 같지 않고, 군데군데 조각상이 있다. 보수하려는 모양인지 접근을 못하게 해 두었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1500년대 중반 안드레아 팔라디프가 디자인한 비첸차의 상징으로 1994년부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1층에는 길이 52m, 높이 25m의 대형 홀이 있고 장엄하게 뒤집힌 배의 선체 모양을 한 나무 천장, 2층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1층에는 유서 깊은 상점들이 있다고 표지판에 쓰여 있다. 구글의 도움 받았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 썩지 않고 버티고 있었을까?
2층으로 올라가면 건물 주변 넓은 테라스가 나온다. 민트색 지붕과 벽의 대리석 모자이크가 이렇게 조화로울 수가!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광장. 광장에 줄지어 늘어선 파라솔을 내려다보니 쇼핑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쇼핑 욕구가 일어난다.
바실리카의 맞은편에 있는 팔라조 델 카피타니아토.
이 건물도 팔라디오에 의해 설계되었고 베네치아 공화국 대령의 거주처로 사용되었다 한다.
시뇨리 광장 가득한 상점들. 주로 핸드 메이드 제품이 많고 그래서인지 가격은 비싼 편이다. 마음에 드는 식탁매트가 있어 사려고 했더니 5장에 15만 원 정도이다. 당연히 안 사고 돌아선다.
비록 하루 평균 만오천보씩 걸어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지만, 이런 이국적 풍경을 보면서 거리를 걷는 것이 여행의 참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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